정신없이 잔 것 같다. 에어콘 덕분에 더운지도 모르게 푹 잤다. 하지만 늦게 일어난 덕분에 아침식사시간에 쫓겨야 했다. 식사시간이 7시부터 오전 9시반까지였던가?? 지난 호주나 일본여행때처럼 스케쥴이 꽉 짜여진게 아니다보니 오늘 오전은 자유시간이었다. 그 때문에 늦게 일어난 것이기도 했다.
식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 가야했다. 아직도 꿈나라인 희야를 깨워서 대충 씻고 식당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햇살은 뜨거웠지만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나온 탓이었는지 그리 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새벽에 도착을 했기에 이곳 리조트 식당은 처음가보게 되는 것이다.
약도에 적힌 길을 따라 작은 숙소건물들 사이로 지나가자 조그만 풀장과 함께 그 옆으로 식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더운지방의 리조트내에 있는 식당이라 그런지 나무로 만든 지붕만 있는 식당이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있다보니 아침식사는 공통적으로 잘 먹는 음식으로 과일, 빵, 우유, 주스, 스파케티, 감자, 햄 등등이 주류를 이루는 부페식이다. 어쩌면 서양식 아침식사랄 수도 있겠지만, 여러나라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의 그나마 제일 무난한 식사가 아닐런지.
식당앞의 조그만 풀장너머로 해변이 보이고 한아름은 넘는 야자수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 나무들 사이에는 그물침대가 더러 보이고, 모래가 있는 곳에는 누워서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나무로 만든 간이침대들도 있다. 희야는 그물침대가 신기한지 얼른 뛰어가 올라타버렸다. 처음 누워보는 그물침대지만 참 편안하고 좋다며 흔들어달라는 주문까지 했다.
아침부터 햇살은 엄청 뜨겁지만 아직은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부는, 발리에서의 첫 아침을 맞는 순간이다. 인도네시아 발리의 모래를 밟고, 야자수에 묶어놓은 그물침대를 타며, 인도양 바다내음이 가득한 바람을 맞으며 말이다.
그런데 식탁에 앉는 순간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식탁에 적힌 안내문구는 여러나라 언어로 적혀져 있었는데 그 중에 우리나라말로도 적혀 있었다. 문제는 한국말이 적힌게 아니라, 한국사람인 우리들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Please ask our waiters to assist you to switch ON/OFF the stove" 아무래도 인도네시아 말을 컴퓨터 번역기로 돌렸나보다. '/'나 쉼표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데다 부적절한 단어들이 난무한다. 무슨 말일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영어를 해석한 후에야 파악이 됐다. 한국사람이 많이 찾고 있고, 그래서 약간이나마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엉망으로 적힌 한글을 보고 있자니 우습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식당에 좀 일찍 도착한 탓인지 에어콘도 제대로 가동안된 상태에서 불판에다 샤브샤프까지 해먹다보니 너무 더웠다. 혹시 너무 더워서 적게 먹게 하는게 이 식당의 상술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꾸역꾸역 열심히 먹어댔다. 그리 입맛에 맞진 않았지만, 그래도 먹을만한 하다 싶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닌가보다. 땀 흐르는건 아예 포기했다. 옷도 충분히 갖고 왔으니...
우리도 못 알아보는 한국말
그물침대와 해변에서 놀면서 사진을 찍고 리조트를 둘러본 후, 점심시간이 다되었을 쯤에 차를 타고 이동했다. 오후에는 원숭이 절벽사원이란 곳을 간다며 그전에 점심식사를 하러 어떤 부페식 현지식당엘 갔다. 야채와 고기 등을 불판에 올려놓고 구워먹기도 하고 샤브샤브처럼 데쳐먹을 수도 있었다.
"우리의 웨이터에게 너를 위에 전환하기 위하여 원조하라고 물으십시요 난로 떨어져"
절벽사원이란 곳은 그러한 사원들 중에 실제로 형체가 있는 제법 큰 사원중의 하나다. 원숭이 절벽사원은 말 그대로 절벽에 위치하고 있는 원숭이가 많은 사원이다. 사원에 들어갈 때에는 반바지나 짧은 치마 등을 입으면 안되기 때문에 천 같은걸 두르고 들어갔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해서 일종의 예의 차원이겠거니 하고 모두 천을 두르고 들어갔다. 아무래도 아예 원숭이들을 그렇게 훈련시킨다라는 의견에 모두 동의를 했다. 가이드는 그냥 웃고만 말았지만, 선글라스를 뺏겼던 사람의 얘기로는 귀에 걸린 채로 얼굴이 바짝 붙어 있는 선글라스인데 아무리 원숭이라지만 사람이 벗기듯 너무나 능숙하게 단번에 빼가더라는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끄덕...
원숭이 무법천지, 절벽사원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믿는 종교에는 신이 참 많다고 한다. 일본도 그렇지만, 이곳도 대부분의 사물이나 동물에도 신이 있어서 그 신들을 믿는다. 차를 몰 때에는 차신에게도 기도를 한다니깐뭐...
그래서 기도를 할 수 있는 사원들이 참 많은데, 동네마다 사원이 있기도 하고 각자의 집이나 방에도 사원이 있다고 한다. 방안에 조그만 불상을 가져다 두고 그곳을 기도하는 자리라고 생각하는 식이라 보면 되겠다. 물론 불교가 아니기 때문에 불상은 아니다 ^^;;
나뭇잎같은 재료로 만든 조그만 사각바구니에다 과일이나 음식을 넣어두고 그것을 사원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래서 집안의 여자들이 그 사원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고 한다. 가게같은 곳에는 노트만한 것도 있고, 자동차나 가게안에는 손바닥만한 것도 있다. 길 중간중간에도 놓여져 있었는데, 주의하지 않으면 발로 차거나 밟을 수 있을 것 같아 신경쓰이기도 한다. 그렇게 되더라도 문제삼지 않는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할 수는 없는 일.
들어가는 입구부터 원숭이들이 무척 많았다. 돼지인지 원숭이인지 분간이 안가는 녀석부터 시작해서 아주 조그만 애기 원숭이까지 마치 공원의 비둘기들처럼 길가쪽으로 가득 했다. 많은 원숭이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우리는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흔치 않은 경험이다. 그래서인지 다들 원숭이가 모여있는 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바빴다.
마피아 원숭이들
그러던 중 사고가 터졌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구경하고 하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서 원숭이 한마리가 나무가지를 타고 다가와서는 우리 일행 중 한명의 선글라스를 벗겨가버린 것이다. 그 원숭이는 조금 멀리 달아나서는 안경테를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선글라스나 모자 등을 주의하라는 얘기를 관광지 소개문구에서도 봤고, 가이드로부터도 얘기를 들었지만 사실 어느 정도인지 실감을 하진 못했다. 그런데 눈 앞에서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되자 그 순간부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다들 원숭이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사람을 겁내긴 커녕 어슬렁어슬렁 다가온다. 나무에 매달린 원숭이 꼬리를 내가 살짝 건드려봤더니 이빨을 드러내며 팔을 막 휘젓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다가오면서도 공격적인 성격인 것이다. 한마디로 성질이 더럽단 얘기다.
선글라스를 뺏기고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는 가운데, 가이드가 윗쪽을 향해 뭐라뭐라 얘기하니까 위에서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내려왔다. 그 사람은 원숭이들의 신같은 존재라고 했다. 보기엔 그냥 관리인 같더만... 아무튼 원숭이 신이란 사람이 선글라스를 뺏어간 원숭이에게 다가가자 선글라스를 내팽게치고 바로 달아나는 것이다. 다행이다라는 안도감과 함께 여성들은 손뼉을 치며 폴짝폴짝 뛰기까지 했다.
그런데 선글라스는 줄 생각안하고 우리 앞쪽 언덕에 주저앉더니 자기가 선글라스를 끼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두리번 거리는 것이다. 그러더니 하는 말... "Three dollar! Three dollar!" 모두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있다가 가이드가 협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말이니 못알아듣긴 했지만, 대략 2달러만 받으라는 것 같았다. 2~3분을 실랑이 하다가 2달러를 주고 선글라스를 찾긴 했지만, 선글라스의 테 부분은 이미 씹혀서 거칠거칠한 정도인 듯 했다. 안경알은 괜찮은 것 같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무척이나 속상했을텐데...
잠시 후에 다른 커플이 원숭이들을 경계하며 절벽해안을 배경으로 삼아 사진을 찍으려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멀리서 있던 원숭이가 옆으로 뛰어서 오더니 벽을 타고 올라가 모자를 휙~ 하고 벗겨가는게 아닌가. 거참...;; 진짜 몽둥이로 확 패버리고 싶었다. 이번에는 원숭이가 모자를 씹기 시작했다. 느낌이 별로 없는지 많이 씹진 않았지만 흠이 나기는 마찬가지. 이번에는 근처에 있던 원숭이 먹이판매원이 모자를 다시 뺏었다.
이번에는 사람을 부른 것도 아니고 원숭이 관리하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다행이다 싶었는데, 팁을 요구하기는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꾼"도 아닌 듯 해서 1달러만 주자는 얘기를 하는 가운데, 가이드가 듣고는 그냥 루피아(인도네시아 화폐단위. 8천 루피아 = 1달러)로 주라고 하면서 그 사람한테 뭐라뭐라 얘기하더니, 그냥 5천 루피아만 주라는 것이다. 가이드도 원숭이들을 이용해서 팁을 요구하는 그러한 모습들에 짜증이 났는지 아니면 미안했는지 인상이 좀 안좋아지긴 했던 것 같다.
일반사람들의 한달월급이 100달러 정도, 고급점원같은 경우엔 200달러 정도라고 하던데, 원숭이 한번 이용해서 2~3달러씩 받아가는건 정말 도둑놈 심보가 아니가 무엇이랴. 정말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 같았으면 오히려 미안해해야할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식민지 시대가 있었던 것처럼, 인도네시아도 네덜란드로부터 식민지 생활을 당해왔었다고 한다.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거의 수백년간이라고 하니까 기간상으로 봤을 때는 비교가 안된다. 악랄함의 정도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전쟁기념관?? 독립기념관??
나와 희야는 별 일 없었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의 선글라스와 모자 테러를 두번이나 본 상황이라 기분이 좋진 않았다. 선글라스나 모자가 원숭이때문에 상한 것 때문이 아니라, 그런걸 이용해서 돈을 요구하는 게 너무나 얄미워서일 것이다.
시원한 에어콘 바람을 쐬며 기분을 가라앉히고는 절벽사원을 뒤로하고 간 곳은 무슨 기념관이라고 하는 곳이었다. 공원처럼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조깅과 여가를 즐기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 탑처럼 생긴 곳이 기념관이었다.
그 안에는 디오라마로 꾸며진 역사관이 있었는데, 원주민 생활부터 네덜란드의 침공, 독립까지 연대별로 수십개의 장면이 묘사되어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가이드가 카운터에 앉아있던 한국사람을 불러줬는데,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서울억양을 쓰는 소녀였다. 어설픈 한국말만 듣다가 유창한(?) 본토발음을 들으니 어찌나 반갑던지.
즐거운 한식식당
덥고 목마름에 지친채 기념관을 빠져나와 찾아간 곳은, 한식이 나오는 한국 식당이었다. 나야 기내식부터 지금까지 계속 다 잘 먹었기 때문에 잘 못느꼈는데, 다른 사람들은 무척이나 반가웠나보다. 어쩌면 신기해서일까??? 외국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는거야 이상할 것도 없지만, 낯선 곳에 놀러와서 이런저런 일 겪으며 하루를 겨우 지내왔는데 그런 곳에서 아예 터를 닦고 지내는 한국인이 있으니 반가움도 적진 않았을 것이다.
이날 간 곳은 "청기와"라고 하는 식당이었다. 말그대로 한옥스타일의 기와지붕을 하고 있었다. 종업원들은 죄다 현지인인 듯 했고 한국말도 어설프게나마 하는 듯 했다. 발리에 도착한 이후로 아직 집에 전화를 못한 탓에 전화기를 찾았는데 오늘 점심때 리조트에서 봤던, 신용카드 국제전화기였다. 녹음된 한국어 안내방송은 발음도 무지 이상해서 알아듣기 힘들 뿐 아니라, 게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신용카드 모두가 잘못된 카드번호라고 다시 입력하라고만 하는 것이었다. 전화기가 이상한가 싶었는데, 여기 한식당에서도 그러했다.
한국에 전화하고 싶다니까 콜렉트콜 직통전화를 안내해주었다. 덕분에 한국에서 출발한지 만 24시간만에야 겨우 한국으로 안부전화를 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