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이서 처음 떠나는 여행
연아가 태어난지 1년하고도 반이 지나가는 여름날이다. 희야와 휴가를 맞추긴 했지만 한창 성수기무렵이라 휴가지를 고르는게 쉽지 않았다. 대부분 예약이 끝나가는 상황인 것도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어린 연아를 데리고 다니며 놀기에 적합한 곳이 그리 많지 않다는게 더 큰 이유였다. 따가운 햇살, 더운 날씨, 붐비는 인파, 비싼 물가, 적절치않은 먹거리 등 걱정해야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좀 조용하고 시원하며 여유로운 곳을 찾다가 자연휴양림이란 곳을 한번 가보기로 했다. 그동안 말만 들었지 어떤 곳인지 가본 적이 없거니와, 숙박시설까지 갖췄다니 우리에겐 더욱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 마지막 휴게소에서
먹거리는 물론 연아에게 필요한 짐들을 모두 트렁크에 잔뜩 싣고 지리산을 향해 떠났다. 지리산은 무척이나 넓은데 그 중에 우리가 가야하는 곳은 지리산의 북동쪽에 가까웠다. 부산에서 출발하는터라 고속도로를 나와 국도를 달려야하는 거리가 제법 되었다. 88 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 사이에 퍼져있는 지리산 자락의 언덕들을 넘어가야했으니 말이다.
진주를 지나 고속도로상의 마지막 휴게소에 내려 잠시 휴식을 취했다. 휴게소 건물 옆 파고라의 그늘에서 잠시 쉬려고 할때, 연아가 옆에 서 있는 오리모양의 놀이기구에 관심을 보였다. 걸음걸이도 불안한 정도였기에 타본 일이 없을텐데 한번 앉혀주자 내려올 생각을 안하는 것이다. 그늘도 아닌 곳이라 땡볕이 그대로 내려쬐고 있는 곳이라 무척 더울텐데도 말이다. 희야와 나는 더워서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도 연아는 내리려고 하면 고함을 지르며 반항(?)을 하기까지 했다. 결국 몇분간 더 재촉했을 무렵 머리와 얼굴이 땀범벅이 되었을때 쯤에서야 내려왔다.
휴게소에 들어가서 땀을 식히며 우동한그릇 먹고 다시 출발하려고 나올때에도 연아는 그곳엘 또 가려고 했다. 나는 연아를 안고, 희야는 몸으로 놀이기구가 있는 방향을 가리고... 마치 영화라도 찍는 듯 그렇게 해서야 차에 오를 수 있었다.
여기가 지리산인가
휴게소에서 나온 후 얼마 후 국도로 빠져서 지리산으로 향했다. 산을 넘어가는 도로이다보니 꼬불꼬불한 길이 참 많긴 했지만, 잠자리와 성질급한 코스모스들이 길가에 가득한 풍경은 도착도 하기전에 우리의 마음에 휴식을 주는 듯 했다.
지리산 휴양림에 도착해서 예약해놓은 방의 잔금을 지불하고 방에 들어갔다. 우리가 예약한 방은 맨션같은 분위기의 콘도 스타일이었다. 원룸형이다보니 좀 불편한 점도 없진 않았지만, 성수기임에도 비싸지 않은 가격에 비하면 만족스러울 만큼 깨끗했다. 냉장고, 가스렌지에다 그릇, 후라이팬까지 다 있어서 식재료만 사와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정도였다.
짐을 정리하고 잠깐 바깥으로 나왔다. 더운 날씨였음에도 시원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나가보니 바로 앞이 계곡이었다. 숙소 앞은 어른들 몇명이서 몸을 담글정도는 되어도 수영을 즐길 정도까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여행객들을 보니 아이들은 수영복차림에 튜브까지 들고 어디론가 가는 걸보니 물놀이할만한 곳이 있긴 있나보다.
숙소앞 계곡에서 자갈이 깔려 발 정도만 담글 수 있는 곳엘 내려갔다. 한여름이었음에도 발이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연아는 자갈위에 세워두었지만 자꾸만 물속으로 발을 담구려고 했다. 너무 차가우니 물에 닿으면 놀라서 안들어갈 줄 알았건만, 아예 발을 담그고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넘어질까 붙잡으려고 해도 놓으라고 팔을 휘저으며 "앙~!!"하고 고함을 지른다. 연아도 나처럼 찬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 날 닮았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저 성질머리도 나 때문인가라며 쓴 웃음을 지으며 자아성찰을 하기도 했다. ^^*
둘째날이 밝았다
여유로운 하룻밤을 지내고 날이 밝았다. 어제와는 달리 날이 조금 흐렸다. 간혹 가는 빗방울도 떨어졌다. 하지만 계속 방안에만 있을수는 없어서 우산 하나를 챙겨들고 간식거리를 챙겨서 연아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옆에 등산로라고 적힌 길은 너무 경사져있어서 계곡위로 난 다리를 건너서 흙으로 덮힌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갔다. 어느 정도 정돈된 산책로로 보이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전망대라는 푯말이 보여서 그 방향으로 향했다. 약간 꼬불꼬불한 산책로를 지나자 길 끝 쯤에 정자하나가 서 있었다. 그곳이 전망대인지는 몰랐으나 갑자기 조금 굵은 비가 떨어지는 듯 해서 얼른 그 위로 올라갔다.
가져온 간식이래봤자 희야와 나는 캔커피, 그리고 연아는 요구르트를 마시며 숲속의 향기에 푹 빠져보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의 푸른 향기를 떠올리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둘째날은 그렇게 간간히 이슬비를 뿌리며 시원하고 촉촉한 숲속의 여름을 우리에게 선사하였다.
아쉬운 마지막 날
정말정말 아쉽게도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휴양림에 와서 딱히 한 것이라곤 가벼운 산책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너무나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1분 1초도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을 붙잡고 싶은 심정일 정도로 말이다.
전날과는 달리 깨끗한 하늘위로 조금은 뜨거운 햇살이 비추었다. 짐을 정리하고 돌아가는 길에 주변을 보니 넓고 조용한 계곡이 참 많았다. 물론 물놀이 하는 사람은 거의 없긴 했지만... ^^
차를 타고가다 잠시 내려서 사진을 찍고 싶을 정도로 이쁜 풍경들이 많았다. 비온뒤 개인 깨끗한 하늘 덕분인지 여유롭고 풍요로워진 마음 덕분인지.
이번 휴가는 연아가 어려서 그냥 조용히 쉴겸 해서 찾아오긴 했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쯤이라면 언제든지 다시 가고 싶은 곳이었다. <끝>


